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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저공비행 - 인정옥 인터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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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저공비행 - 인정옥 인터뷰

WhiteApple 2011. 10. 27. 05:49



작가주의라는 의미가 모든 예술장르에 통할 수 있다면...

영화.미술. 음악이 아닌 드라마에도 엄연한 작가주의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최근 몇몇 드라마작가에게는 그들의 매니아라고 불리는 열혈 시청자들이 존재합니다.
작가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숨겨진 의미를 찾고,교감하는 든든한 아군이 있는 셈이지요.
50퍼센트를 넘나드는 평범한 작품보다는...단 10퍼센트의 시청자들이지만 가슴과 머리로 공명하는 작품을 쓰겠다는 인정옥 작가.

<여고괴담> 의 시나리오 작가에서 출발해서,2002년 젊은 세대의 경전이 된 <네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까지.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감각적이지만 경박하지 않은 그녀의 작품세계를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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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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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안녕하세요.

인정옥(이하 인) : 안녕하세요.

김 : 최근에 아일랜드 드라마 끝냈죠.

인 : 네

김 : 제가 아까 언제 끝났냐고 물어봤는데, 지난주인가 지지난주인가, 방송을 안 보시나요?

인 : 아뇨. 그간에는 다 봤는데, 마지막 두 회는 못 봤어요. (김: 왜요?) 술 먹은 것 같아요. (웃음) 시간이 갔는데 어떻게 갔는지를 잘 몰라요.

김 : 이런 드라마를 한번 쓰고 나면 사람이 탈진하나요?

인 : 사람이 이상해지죠. (웃음)

김 : 어떻게 이상해지나요?

인 : 사는게 적응이 잘 안돼요. 아마 티비 속에 있다가 방에만 있다가 그래서 그런가 봐요.

김 : 그러니까 자기가 만드는 드라마 판타지 세계 속에 푹 빠져 있다가, 배우가 자기가 연기하는 역할에 푹 빠지는 그런 것과 비슷한가요?

인 : 네. 작가도 비슷해요. 작가도 배우 같아요.

김 : 그럼, 최근 하신건 아일랜드인데, 아일랜드라는 드라마를 집필을 하시면, 왜 주인공인 사람은 주인공으로 감정이입하고 그렇게 한다고 하면, 작가는 어떻게 감정이입하는지.

인 : 저는 저를 분해시켜서 배우들한테 감정이입을 시켜요.

김 : 여자주인공에 감정이입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남자주인공에 감정이입 한다던지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감정이입 한다던지 그런 건 겪어보지 않은 거는 쉽지 않잖아요.

인 : 겪어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어요. 그게 그 제 캐릭터들은 나이가 들고 말고 남자고 여자고 성 역할이 명확하게 나눠지지 않아요. 나이도 마찬가지고.

김 : 그럼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정옥 씨의 감정과 뭐 그런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떼어서 나눠 준 사람들이에요?

인 : 네. 상상력과 정서로 그냥 다 조금씩 나눠져 있는 사람들이에요.

김 : 그럼 우리 시청자들은 인종옥 씨의 분신들을 보는거네요, 다.

인 :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분할을 보여준 부분은 아마 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들일 거에요. 보편적으로. 그래서 저의 분신이라기보다는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음, 정서들, 제가 혼자서 상상으로 분할을 시킨거랑 저의 분신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안한 얘기같은데요.

김 :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군요. 인종옥 씨의 드라마는 특이하다, 제가 드라마는 잘 못 봤는데, 매니아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대사를 해석하고 어떤 뜻으로 한 말일거야 이렇게 해석하는 매니아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왜 그런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인 : 그게 아마 방송에서는 음, 언어를 함축적으로 쓰는 경우가 드물거에요. 저는 근데 대사들을 별로 신경쓰지는 않는데, 쓸데없는 대사는 다 제거를 해요. 그러다보니까, 쓸데없는 대사를 다 제거하다보니까, 해석을 마음대로 하시고, 그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렇게 해요.

김 : 나는 이런 뜻으로 썼지만 사람들이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거군요. 그런데 원래 드라마 작가들은 자기가 의도한 것을 시청자들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서요.

인 : 저는 그렇게 안 원해요.

김 : 아, 마칠까요? (웃음) 다 나오는데. 저희가 그 화법, 낯선 화법에 대한 기사를 하나 찾아봤는데, 이런 식이더라고요. 어, 안 뺏긴다 너, 좋아해 내가. 동사가 먼저 나오고 주어가 나중에 나오고, 부사가 중요한 그런 거군요. 이런 거는 왜...?

인 : 의도적인 것은 아니고요, 먼저 해야 할 얘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빨랑 술어가 등장해야 감정을 바로 전달할 수 있으니까, 목적어가 중요하다기보단 술어가 더 중요하니까.

김 : 제가 음, 저도 나름대로 글도 쓰고 하거든요? (웃음) 근데 화법, 화법에 대한 기사를 보다보니까 주어 술어를 뒤바꾼다거나 아니면 조사를 빼버린다거나 하는 거는 그에 대해 대단히 미묘하고 도달한 경지인데, 말줄임표를 쓸 때 점을 두 개 쓴다거나 세 개 쓴다거나 하는거에도 민감하시다면서요.

인 : 네. 아까 말씀드렸지만 배우들 리딩하러 갔을 때도, 연기 못해도 되니까 마침표만 잘 보라고, 쉼표하고 마침표만. 마침표 몇 개인지.

김 : 왜냐하면 마침표 하나마다 감정이 담겨있어서, 마침표가 길면 그만큼 긴 감정을 담아달라는 뜻이고 그러니까, 그죠.

인 : 네. 숨쉬는 법이어서. 대사는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닌데, 대사와 대사 사이에 감상이 더 중요한 거거든요. 그래서 대사와 대사 사이에 쉼표 마침표 잘 봐달라고 하죠.

김 : 드라마 쓰시는 분들 철칙이, 자기 글 더 사랑하지 않기, 뭐 그런 건데 도달하셨나요?

인 : 네, 도달했어요.

김 : 너무 푹 취하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거. 연애편지가 떠오르는데, 왜 글쓰는 사람들이 자기가 쓴 글 놓고 밤에, 너무 잘 쓴 것 같애서 자기 글 막 읽고 그러는데, 그걸 낮에 읽는 사람은 유치하다고 볼 수도 있고, 무슨 소리인지 모를 수도 있는데, 글 쓰는걸 직업으로 삼다보면 자기하고 글을 읽는 사람하고 거리를 잘 조절해야 하잖아요. 그런 거에 비교적 성공하신 거라는 거죠?

인 : 제 글 자체에 빠져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제가 쓰는 글은 배우들을 위한 글이고, 배우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글 자체를 배우들이 너무 떠받든다거나 매몰된다거나 저는 그거를 좋아하지 않아요. 제 글은 그냥 배우가 말하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 굉장히 시큰둥하시네요. (인: 살짝 실소) 저는 그런 시큰둥한 태도가 씨니컬한 태도하고 틀리다고 보는데

인 : 씨니컬은 어렸을 때 조금 했었고요, 지금은 안 해요. (같이 웃음) 시큰둥은 있고요.

김 : 개인적으로 시큰둥과 씨니컬을 어떻게 구별하세요?

인 : 씨니컬은 좀 더 용기있는 자세고요, 시쿤둥은 좀 더 비겁한 자세고요.

김 : 제가 개인적으로 말씀드려보자면, 씨니컬은 교통사고가 팍 났어요, 사람이 죽거나 다치거나 하고 교통사고가 났는데, 그걸 보고 사람은 뭐 다 한번 죽는거지 하는게 씨니컬한거고, 교통사고가 났는데 안 돌아봐, 안 돌아보고 사람이 다치지 말아야 할텐데 이러는게 시큰둥인데, 이런 태도로 방송사에서 작가를 하는 것이 쉽지가 않을 텐데, 방송사에서 시청률에 따라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많고 그럴텐데, 그런 시큰둥한 태도를 가지고 자기가 이 대사 쓰고 그러는 거 유지하는 게 어렵지 않나요?

인 : 그 저 제가 일하는 감독님들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저랑 일을 하자고 오세요. 그래서 그냥 너무 막나가지 않을 정도면 많이 봐주시는 것 같아요. 감독님들이 저를 잘 보세요.

김 : 그러면 이건 어때요. 그런, 소수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니아분이 존재하고, 소수라고 해도 텔레비전 소수는 수십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스타일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 같거든요. 사람들이 인종옥 작가는 뭔가 있다 할 때 이유가 있을 것인데, 스스로는 주고 싶은 메시지나 그런게 있나요?

인 : 메시지는 없고요 정서라면 아마 일관된 정서가 있을테지만 아마 드라마에서는 작가의 스타일이나 스타일리쉬한 작가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세계관을 드러내는 작가가 희귀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것 때문에 좋아할 수도 있고 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김 : 인종옥씨의 세계관은,

인 : 시큰둥이죠. (함께 웃음)

김 : 왜 시큰둥입니까?

인 : 아등바등 해서 뭔가 되는게 아니더라고요. (김: 젊었을 때 나도 많이 했는데?) 안 했어요. (폭소) 그런데 봤어요. 봤는데 정말 목표를 향해 가서 거기 서 계신 분들이 세계를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자기도 재미없어하고 그러는 걸 봤어요. 그럴거면 조금 시큰둥하게 살아도 좋은 마음으로 살면 세상도 편하고 나도 좋을거라고 생각해요.

김 : 예를 들면 시청률 같은 숫자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인 : 그 숫자에는 스트레스 안 받는데요, 초반에 1회때 시청자 게시판을 들어가서 봤어요. 그런데 욕을 많이 먹었어요. 겉멋 작가(김어준의 부가 설명 조금 붙음. 인 작가 수긍.), 재수없다. 그래서 그 그냥 사실은 아일랜드는 음, 사람들한테 좀 버거울수도 있고 거부감 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거부감 들 수는 있는데 그정도로 토할줄은 몰랐거든요. 그래서 시청자 게시판 들어갔다가 하도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와서 그 다음부터는 안 들어갔어요. 그래서 욕할 거 같은 거는 안 봤어요.

김 : 그게 마음에 상처가 되나요.

인 : 그게 신문에 나온건 상처가 안 되는데, 네티즌들이 나를 눈앞에 두고 욕을 해놨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계속 뇌리에 남던데요.

김 : 그래서 글을 쓰는 시나리오의 방향도 영향을 받았나요?

인 : 안 받아요. 마음만 아프지. 뭘 알아야 영향을 받죠.

김 : 영화 시나리오도 하셨죠?

인 : 영화 시나라오가, 사실 글은 영화 시나리오를 먼저 쓴거에요, 여고괴담이라고. 여고괴담을 쓰고 학생이 선생 죽인다고 3년동안 파이넨싱이 안 됐어요. 그래서 그거는 (김: 그렇게만 말하면 굉장히 무시무시한데) 회사도 망하고 그래서 돈 돈이 없어서 예능계 가서 테마게임을 썼어요. 그리고 해바라기라는 단막극을 쓰는데 그때 여고괴담이 파이넨싱도 되고 영화화 됐어요.

김 : 영화 시나리오하고 드라마 대본하고 쓰실 때 차이가 있나요?

인 : 네. 많이 차이가 나요. 영화 시나리오는 완결성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그 몇 달 동안 세 달 동안 집중해서 완결된 구도를 내놓는 작업이라, 그게 저한테는 좀 편한 작업이에요. 그렇긴 한데 드라마가 재미있는 점은 드라마는 성장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쓰는 동안에도 제가 성장을 하고 그 캐릭터가 머리 속에만 있던게 현실화되는걸 현장에서 보니까, 배우들하고 나하고 한몸이 되는 것도 느끼고. 영화라면 현장에서 감독만 느끼는 거를 드라마는 작가도 티비 앞에서 느껴요.

김 :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없나요?

인 : 대사는 다 까먹었어요. 네.

김 : 말씀하신대로 배우가 그 대사를 내뱉고 나면 잊혀져도 된다는 건가요?

인 : 네.

김 : 그런데 그걸 붙잡고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럼...

인 : 제가 안 쓴거니까 그 사람들 그래도 되죠.

김 : (웃음) 그분들은 그래도 되고.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에서 작가주의 작가, 이것도 좋아하실지 싫어하실지 모르겠지만, (인: 싫어해요) 그럼 왜 싫어하십니까?

인 : 제가 작가주의 작가라고 하니까 음, 프랑스 누벨바그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작가주의라는건 그게 자기복제냐 작가주의냐 그 한계가 규명되지도 않았고 그에 대한 논의가 완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똑같은 작가가 비슷한 작품을 내놓으면 작가주의다 얘기를 하는데, 단지 그것을 못 벗어나서 하는걸수도 있거든요. 저는 안 그러려고 노력을 했어요. (김: 그런데도 비슷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작가주의라는) 그래서 작가들이 작가주의를 경계해요.

김 : 나는 작가주의 작가기 때문에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해도 되는 사람이야, 라는.

인 : 작가한테 위험하죠.

김 : 그래서 작가주의가 아니다. 그런데 일관된 메시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거잖아요.

인 : 뭐, 작가주의 아니어도 일관된 메시지는 뭐. (웃음)

김 : 오늘 다 되었습니다.

인 : 고맙습니다.


200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