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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인터뷰 - 이 세상의 모든 심각함을 깨고 싶다 본문
이 세상의 모든 심각함을 깨고 싶다
친한 지인이 해외 출장을 가던 길이었다. 공항 라운지에서 우연히 김태원의 맞은편에 앉게 됐는데, 불편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아는 척하기도 뭐했는데, 김태원이 먼저 인사를 건네더란다. “안녕하세요!” 그래서 그 친구도 덩달아 꾸벅 인사를 했단다. 연예인에게 먼저 인사를 받아본 그 친구, 그때부터 김태원 ‘칭찬드립’을 퍼뜨리고 다니고 있다. 연예인이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김태원에게 그건 당연한 일이다. 왜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김태원의 대답은 그야말로 시크하다. “한 200년 삽니까? 사람 얼굴 봤는데 인사도 안 하게!” 사람들은 김태원을 두고 4차원적 매력의 뮤지션이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그는 단순한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직접 만나본 김태원은 때론 시적으로 때론 유머러스하게 자신이 이 지구에서 사는 원칙에 관해 느긋하고도 신중하게 말했다.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선 주어와 서술어를 먼저 사용하고, 그 뒤에 목적어를 나열하는 김태원식 어법으로 말이다. 가끔 그는 에디터에게 역으로 질문도 던진다. 이 모든 과정은 김태원을 알아가는 아주 독특한 소통의 과정이었다. 에디터 김수연 포토그래퍼 이창주
예능이음악보다못한개념이라고생각하지않는다
최근 연말 콘서트로 바쁘셨지요. 1월 22일 대구 콘서트가 아직 남았습니다. 가을에는 새로운 정규 앨범을 낼 계획이고 그 전에 프로젝트 앨범 4장 정도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2009년보다 2010년이 바빴고요. 2011년은 더 바쁠 겁니다.
프로젝트 앨범은 어떤 형태의 앨범이 될까요. 아마 ‘With’ 개념이 될 것입니다. 부활과 함께 누구, 이런 형식 말이지요. 쉽게 말해 컬래버레이션 앨범이라고 보면 됩니다. ‘With’로 투입될 사람은 결정됐습니까. 결정됐는데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닙니다(인터뷰가 진행된 1월 초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난 17일 디지털 싱글인 ‘부활 Collaboration Project’라는 이름으로 ‘비밀’이라는 곡이 발표돼 온라인 음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비밀’의 보컬은 부활의 이전 보컬리스트였던 박완규가 맡았다. 부활의 두 번째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는 인디신의 유명 여가수 요조와 함께다).
한동안 예능인 김태원, ‘국민 할매’로 각광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남격 밴드’,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 드라마 <락락락>으로 뮤지션 김태원이 본격 조명되어 팬의 입장에서 참 반가웠습니다. 26년 동안 음악을 했지만 1년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미지가 확 바뀌었습니다. 단 1년 만에 말이지요. 과연 다시 (음악인의 이미지로) 되돌아오는 데 몇 년이 걸릴 것인가 고민했어요. 물론 행복하게 예능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제자리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특히 콘서트할 때 많은 관객 분들이 부활을 찾아주시는 걸 보면 더 그걸 체감하게 됩니다.
참 아이러니하네요. 뮤지션임을 부각하기 위해 예능을 시작했는데, 예능인의 이미지로 굳혀질까 걱정이 되다가 생각보다 쉽게 다시 뮤지션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내가 그 시작이고 싶습니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비극으로 끝나면 안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노력하는 중입니다. 드라마 <락락락>을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4개월 정도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한 드라마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나 굵직굵직한 이야기의 맥락은 실제와 똑같다고 봐도 됩니다. 단지 그 안에 소소하게 표현된 몇몇의 부분은 드라마틱한 설정을 위해 추가된 픽션이지요.
이승철 씨와의 관계가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깜짝 놀랐습니다. 이젠 과거 감정에 대한 앙금도 깔끔하게 정리한 건가요. 그 부분(이승철과의 갈등 부분)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던 걸로 압니다. 나와 이승철 씨가 그 부분에 대해 각자 인터뷰를 하면서 언급하다가 오해가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이승철 씨 입장을 축으로 삼으면 그분은 그분대로 현명한 판단을 하며 살아온 겁니다. 저는 또 저 나름대로 제 축을 중심으로 인생을 살아왔고요. 그 두 축을 두고 어떤 축이 더 우월한지, 맞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승철 씨는 어릴 적 연이 되어서 만난 친구입니다. 이젠 죽을 때까지 만날 사람이지요. 안 보면 못 사는 사이예요. 요즘, 내 나이 마흔여섯쯤에 그게 사실은 이런 이야기였다 정도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승철 씨와 저는 서로 사랑하지만 세상이 우릴 못 만나게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터뷰 중간, 청춘 시절부터 부활의 팬이었다는 중년의 M25 포토그래퍼가 그의 인터뷰를 옆에서 조용히 듣고 가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김태원은 선뜻 “앉으시지요. 함께 대화합시다”라고 말하며 대답을 계속 이어갔다. 그래서 인터뷰는 본의 아니게 청중 둘(포토그래퍼와 그의 어시스턴트)을 방청객으로 두고 진행하는 토크쇼 현장이 돼버렸다.
속에 담은 걸 툭 털어놓으니 속이 좀 시원하나요. 내 가슴 속에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풀었지요.
예능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부활의 입지가 다시 ‘부활’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락락락>에서 보여지는 음악에 대한 당신의 소신이나 자존심을 보면, 예능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제가 예능을 2008년 말에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 이미 너무 많이 험한 상황들을 겪으며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예능을 하면서 보여지는 이미지에 대한 걱정 같은건 없었습니다. 제 심경을 건드릴 만한 것은 사실 별로 없어요. 다가오는 시간들을 모두 즐기면서 사는 거지요.
자존심보다는 음악을 길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겁니까. 아니오. 저는 예능이 음악보다 못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우가 코미디언보다 상위 개념에 있는 사람입니까? 그건 정말 덜 된 사람들이나 하는 이야기지요. 예능을 했던 시간들도 제 인생이고 제 삶이고 제 시간들입니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습니까. 행복한 거지요.
히트를 목적으로 하는 곡은 히트할 수 없다
<위대한 탄생>에서 심사위원으로서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뮤지션의 입장으로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즐거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김태원은 자신에 대한 약간의 칭찬 코멘트만 해도 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저 자신도 데뷔 때 힘들었기 때문에 압니다. 데뷔라는 것이 그 사람에게 전달하는 희열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그런 기회를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어서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누군가에게 산타클로스가 된 느낌이랄까요. 심사하면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선생님이 무서워서 학교를 안 갔거든요.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그 친구들에게) 그런 선생은 안 되고 싶습니다. 혼을 내도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심각함을 깨고 싶다”고 말입니다. 심각할 이유가 없어요. (조금 단호한 어조로) 심각하려고 하는 것 때문에 모든 부작용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 지구에서!
참가자 중 눈에 들어오는 오디션자가 있습니까. 전 잘생기고 노래 잘하는 분들은 이미 큰 기획사에서 다 선발했다고 봅니다. (다시 강조하며) 이미 뽑아갔지요! 그런데 정말 보석 같은 사람들 중에 노래는 잘하는데 다른 요인 때문에 음악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인데, 왜 눈이 즐거워야 합니까? 오히려 라디오가 주요했던 시대의 음악이 더 좋지 않습니까? 사실 부활도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 오는 데 많은 노력을 하며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전 그런 사람들을 발굴하고 싶습니다.
좋은 곡들이 많지만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곡들은 당신이 처절한 경험을 한 뒤에 쓴 곡들입니다. (특유의 말투로) 참 아이러니지요.
그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이해야만 좋은 곡들이 나오는 뮤지션의 창작 본능이 가끔 저주스럽진 않았나요. 지나갔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는 거지요. 엄청나게 추운 날, 한겨울에 비가 오는데 따뜻한 난방이 되는 아파트 창가에서 나는 바라봅니다. 밖을 보니 어떤 소녀가 추운 데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그 소녀를 바라볼 땐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건 마치 한 편의 영화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어떻겠습니까? (그 질문에 에디터가 “정말 춥고 힘들겠지요.”라고 답하니) 웃긴 거예요, 상황이! 그 소녀의 상황은 과거이고 따뜻한 아파트의 나는 현재의 나입니다. 그렇게 뒤돌아 바라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겁니다.
얼마 전 TV에서 “이젠 가족들이 있어,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야 명곡이 나오는 거라면 포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고맙습니다. 내가 나오는 방송을 또 봐주셨네(웃음). 그건 보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왜냐하면 히트를 목적으로 쓰는 곡은 히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히트곡은 아주 불현듯 찾아옵니다. 뭐 단기간에 1주 정도 1위하는 곡은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비틀스의 명곡과 같은 불후의 히트곡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진심이 담겨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곡가의 곡이나 가수의 노래는 입에서 나오는 순간,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그건 그 순간 듣는 사람의 것입니다. 노래에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지만 그 곡을 듣는 사람이 자기에 맞춰 가사를 들으며 곡을 듣게 되어 있는 것이 노래거든요. 그 노래가 BGM이 되어서 심금을 울리고 자신이 그 노래 속의 주인공이 되어야 사람들은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 가사를 무척 신중하게 씁니다. 혼을 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좌중 침묵하며 진중하게 듣자) 내 이야기가 너무 심각한가요? (그의 말을 듣던 이들 모두 아니라고 항변하자) 고마워요. 이 책(M25)은 내가 살펴보니 이런 진중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타이틀곡이 아니어서 가려졌던 곡들이 있을 것 같은데, 당신한테는 어떤 곡이 그런가요. 부활의 12장 앨범 중에 타이틀곡 빼고 전부 다입니다. 왜냐하면 다 목숨을 걸고 만들어 녹음한 곡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내가 죽고 난 다음에라도 좋은 음악은 분명히 알려지게 될 날이 오게 될 겁니다.
직접 쓴 곡을 완벽하게 부를 수 있는 싱어의 재능까지 있었으면 하는 순간은 없었나요. 그건 역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노래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였다면)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감성은 없겠지요. 왜냐하면 그만큼 자만했을 테니까요. 세상을 다 얻었을 테니까, 분명 그럴 겁니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들은 대개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전 앞으로 정상을 향해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합니다.
뮤지션은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다고들 하던데, 뮤지션 김태원은 무대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나는 무대에 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과연 무대 위에서 죽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당신은 그럴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 만한 자격은, 죽을 때까지 만들어 가야 하는 겁니다. 뮤지션은 죽을 때까지 그 자격에 대한 임무를 다해야 합니다.
음악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부활’이 가능했다
대화 혹은 평가에 대한 코멘트를 할 때 ‘아름답다’라는 말을 잘 씁니다. ‘아름답다’라는 언어는 내가 지키는 언어입니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내 와이프를 만났을 때, 내 첫사랑을 만났을 때,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가 태어나던 날. 그런 날들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당신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은 어떤 때입니까. 나는 일상이 항상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야만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도인 같은 말입니다. 마음을 비워야 그런 생각이 드는 건가요. 내가 인생을 그렇게 살아서 가능합니다. 난 자연스러운 게 좋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 좀 해보지요. 그 시절, 콤플렉스와 열등감 때문에 기타와 음악에 열중했다고요. 시선을 받고 싶었던 욕망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그건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 음악은 당신에게 구원과 같은 의미였나요. 그렇지요. 음악은 그러니까, 그때의 내 기타 소리는 내 언어였어요. 왜냐하면 나는 워낙 폐쇄적인 성격이었거든요. 드라마 <락락락>에서는 학창 시절 기타 솜씨를 뽐내려고 다른 학교에 배틀을 하러 가는 설정이 있지 않습니까. 실제의 나는 절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 설정은 드라마를 위해 만든 것이지요, 사람들 앞에서 말도 못하고 말하는 사람의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숫기가 없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뮤지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부모님이 참 대단합니다. 그건 맞아요. 특히 저희 아버님이 저와 비슷한 인생을 사신 분이세요. 저희 아버지가 지금 75세이신데 아버님이 20대 시절, 그 당시 거리에선 볼 수 없는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하셨어요. 월급 받으면 그 월급 전부로 양복 한 벌 사 입으실 정도로 멋쟁이셨습니다. 지금 그 당시의 아버지 사진을 보면 어디 외국 로커, 혹은 배우 같은 차림이십니다. 멋을 아시고 놀 것도 다 놀아보셨던 분이죠. 또 그 당시에 유명한 ‘주먹’이기도 했고요(웃음). 그렇게 청춘을 사시다가 우리 어머니를 만나 확 바뀌면서 지금까지의 인생을 사셨지요. 저는 그런 아버지의 완벽한 ‘카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이 아들을 더 잘 이해하고 격려해줄 수 있었나 봅니다. (저를) 절대 건드리지 않았지요. 엇나갈까 봐. 잔소리도 절대 하지 않으셨어요. 담배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피우기 시작했어요. 그때 아버지는 담배를 피울 거면 ‘신탄진’ 같은 독한 담배 말고, 좋은 담배를 피라면서 조용히 방에 놓고 가실 정도였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았는데,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면서 술마저도 끊은 것으로 압니다. 술도 못 마시는데 스트레스는 대체 어떻게 푸나요. 술 끊은 지 1년 됐어요. 술은 끊었지만 술을 하도 많이 마셔서 술 먹고 가는 ‘필’은 정확히 기억합니다. 이젠 술 마시지 않고도 그 느낌으로 술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안 먹어도, 갑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옛날에도 술로 스트레스를 달랬다고 볼 순 없어요. 석가가 되는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절대 풀 순 없습니다. 제 경우는 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런 내 자신과 싸웁니다. 그렇게 싸우는 걸 즐기는 겁니다. 전 제 자신과 싸우는 걸 즐깁니다.
요즘은 어떤 화두로 스스로와 가장 많이 싸우나요. 그 화두는 생기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겁니다. 전 싸울 거리를 계속 만듭니다. 의문이 사라지면 의문을 만듭니다. 죽을 때까지 의문을 풀면서 살다가 죽을 겁니다. 요즘의 화두를 물었나요? 요즘은 정말이지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막혀 있던 것들이 펑 터져 그것이 하나, 하나씩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지금 정말, 제가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에게 다짐한 약속이 참 많습니다. 그걸 지켜가면서 계속 스스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지키는 건 ‘순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작가가 순수를 잃었을 때, 내게 그 작가는 이미 작가로서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당신 인생의 화두는 ‘순수’입니까. 네. 인간은 태어났을 때 완벽한 순수로 태어나 그걸 계속 써나가면서 타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그 순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거지요. 저한테는 그 순수가 아주 조금 남아 있습니다.
많은 뮤지션들이 드라마틱한 삶을 살지만 유독 더 드라마틱하게 살았습니다. 인생의 바닥을 치는 순간마다 어떤 힘으로 스스로를 ‘부활’시킬 수 있었나요. 그건 간단해요. 음악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부활’이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에 미쳐 있어요. 마치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허공에 내가 생각하는 음악들이 소리로 떠 있는 걸 매일같이 느껴요. 지금도 내 귀에는 그 음악들이 들립니다.
김태원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입니까. 가족은 내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존재입니다. 내가 고아였다면 아마 김현식 선배 나이 대에 벌써 죽었을 겁니다. 왜? 미련이 없었으니까. 마약을 했다는 자체는 삶보다 마약을 더 좋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알코올에 중독됐다는 것은 삶보다 술을 더 좋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목숨만큼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중독이거든요. 내겐 그런 걸 다 버릴 수 있을 만큼 가족이 아름답습니다.
어찌 보면 평생 한량으로 살았는데, 요즘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게 답답하진 않습니까. 전혀. 나는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을 때가 많아요. <남자의 자격>에서 저를 잘보세요. 가만히 보면 생각이 다른 데 있어요. 나를 제외한 방송인들은 카메라 앞에서 늘 뭔가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저는 일단 정신이 다른 데 있어 좀 다른 리액션이 나와요(웃음).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답답함은 못 느껴요. 그러니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지요. 시청자들이 그 부분을 사랑해주셔서 참 다행이에요. 매우 감사드릴 일입니다.
대중들에게 어떤 뮤지션으로 각인되고 싶습니까. 이 지구에서 음악에 미쳐 있던 사람들은 비교적 단명하지 않았나요. 잠시 확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운 스타에 열광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이젠 존재하면서 끝까지 무언가를 이뤄내는 게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대중들에게 나는 그렇게 각인되고 싶습니다.
뮤지션 김태원
1965년에 태어났다. 1986년 록 밴드 ‘부활’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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