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올란타이탐보
- 에쿠아도르
- Ecuador
- ollantaytambo
- 멕시칸
- 빠에야
- 요리
- 잉카
- inca
- 끼또
- baking
- 푸노
- 브런치
- macchu picchu
- 마추피추
- puno
- 남미여행
- 여행
- City tour
- quito
- hoho bus
- 남미
- 베이킹
- 페루
- 맛집
- 피자
- Peru
- 이탈리언
- CENTRO
- 샌드위치
- Today
- Total
W h i t e A p p l e ' s
이동진 기자의 이창동 감독 인터뷰 (2) 본문
-윤정희 선생님은 ‘만무방’ 이후 십수년 간 출연작이 없었던 배우이신데,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셨습니까.
“처음부터 주인공 미자 역을 맡을 사람은 윤정희 선생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극중에서 윤정희 선생님이 맡은 캐릭터의 이름은 양미자입니다. 그런데 윤정희씨의 본명이 ‘손미자’이잖습니까. 미자라는 이름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손미자가 본명인 윤정희씨를 떠올리신 건가요,아니면 윤정희씨를 캐스팅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인물에 미자라는 이름을 붙이신 건가요.
“설사 윤정희 선생님의 본명이 미자가 아니었어도, 주인공의 이름은 미자였을 거에요. 더 적절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공교롭게도 본명이 ‘미자’이시니까, 이걸 우연의 일치라고일치라고 봐야 하는 건지, 필연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예전에 제가 발표하려고 했던 소설 중에서도 주인공 이름이 미자인 작품도 있었죠. 제가 원래 좋아하는 이름이에요. 좀 촌스럽지만 아름다운느낌입니다.”
-‘밀양’에서 주인공 이름 ‘신애’에 ‘믿음(信)’과 ‘사랑(愛)’이란 뜻을 숨겨놓았듯, 이번에도 ‘미자’란이름 속에 ‘아름다움(美)’의 의미를 담으신 거죠? ‘시’는 결국 아름답기 어려운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추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묻는 영화일 테니까요.
“그래요.(웃음)”
영화 '시'의 감독 이창동. ⓒ 이동진닷컴-사진가 김보배 |
-‘시’에서 미자는 좀 엉뚱한 면모가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상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인물은 소녀 같습니다. 미자라는 캐릭터의 핵심은 무엇이라고생각하셨는지요.
“이게 너무 뻔한 개념일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순수함이라고 생각했어요. 소녀 같다는 느낌 자체가 그런순수함에서 오는 거죠. 좋게 말하면순수함일 테고, 좀 나쁘게 말하면 노년의 나이에도 현실의식이 없다든가사회화가 덜 되었다는 식으로 볼 수도 있을 거에요.”
-이 영화에서 윤정희씨는 철저히 미자스럽게 보입니다. 독특한 발성과화법과 표정까지 미자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기본적으로 연기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우와 캐릭터의 관계 자체가 거기에 반영되어있기 때문으로도 여겨지던데요.
“저는 캐릭터에 대한 기준을 갖고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배우가영화를 통해 특정 인물로 살아갈 때그 인물이 되는 것이지, 제 머리 속에 있었던 인물의 모습 쪽으로 배우를 끌어오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시나리오를 내가 직접 쓰는데도불구하고 그래요. 저 역시 현장에서윤정희씨가 미자를 연기하는 걸 보고 그 인물에 대해 느껴요. 심지어‘아, 미자가 저런 인물이었구나’ 싶을 때도 종종 있어요.(웃음)”
-촬영 현장에서 윤정희씨를 보면서 배우로서는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배우로서 자세가 무척 좋으신 분이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조금 걱정한 부분이 과거에 수백편에 달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영화에 출연하셨는데, 그게 이미 그분을 형성하고 있을 듯하다는 느낌이었죠. 그건 단지 굳어졌다는 표현 이상의 것일 거에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당연히 어떤 지점에선 저와 부딪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다른 세월을 살아온 것이니까요. 그런데 배우로서 굉장히 열려 있으시더라고요. 자신이 이미 거두어놓은 것, 속에 담겨 있는 것들을 버리는데 있어서 조금의 저항이 없으세요. 놀랍더라고요. 젊은 배우도 그렇게 잘 안 되거든요.”
-이번엔 촬영 현장에서 배우 분들과 어떠셨어요? 사실 감독님 현장은 쉽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전보다 분위기가 더 좋았어요. 제가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밝아지려고요.”
-이번만큼은 자학하지 않으셨나 봅니다.(웃음)
“안 보이는 데서는 당연히 혼자 자학을 했죠.(웃음) 그래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 많이했어요.”
-‘시’는 왜 다르게 마음을 먹으셨습니까.
“이전에 다른 젊은 배우들에게 하듯 현장에서 마구 자학에 빠지는 모습을 윤정희 선생님에게까지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게다가 윤정희씨 본인이 무척 밝으세요. 그 분의 밝은 기운을 제가 받아들였다고 할까요. 제 어두운 모습으로 굳이 균형을 맞출 필요는 없었죠.”
-‘시’는 감독님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고요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첫 장면만큼은 대단히강렬했죠. 햇살 가득한 강에 소녀의 시체가 둥둥 떠오던 끝에 ‘시’라는 제목이 뜨는 오프닝 신의 섬뜩한 역설은 그 자체로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름다울 수 없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 시란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부터 던지면서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할 때는, 사실은 삶이 이러저러한데 그때 시가 무엇이냐를 묻는 것이거든요. 질문에 그런 조건이 붙어 있는 셈이죠. 사람들은 시에 대해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통념을 갖고 있지만, 그건 삶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기에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잖아요? 삶에서든 시와의 관계에서든,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우리의 생활 속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거죠. 그런 것들은 대부분 나와 큰 상관이 없는 일들로 여겨지지만, 사실 관계가 있어요.”
-‘시’의 도입부에서 병원에 간 미자가 무심코 쳐다보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아이를 잃고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여자가 등장하는 게 그런 맥락인 것 같습니다.
“바로 그렇죠. 일상에서 그런 장면을 뉴스로 보면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 뒤의 장면에서병원을 나오던 미자가 딸을 잃고 정신을 놓은 채 울부짖는 한 여자의 모습을 볼 때도 딱하게는 여기면서도, 자신과 이렇다 할 관계는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였을 거에요. 하지만 내 발 밑의 물이 연결되어있듯이, 그게 미자와 결정적으로 관련이 있었던 거죠.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팔레스타인까지도 연결되어 있는 거에요.”
-미자는 감독님의 이전 영화 주인공들과는 상당히 다른 캐릭터입니다. 자신과 관련된 사건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어떤 자리든 항상 늦게 들어가서 도중에 먼저 나오는 미자는 종반부에 이르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회피하려 듭니다. 어쩌면 미자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 병까지도자신에게 엄습해오는 삶의 고통에 대해 잊고 싶어하는 소망이 발현된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하죠.
“지금 말씀하신 게 제가 이 영화를 통해 던지려고 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을 듯해요. 그게 시의 의미에대한 것이든, 일상과 도덕성의 관계에 대한 것이든, 지금 미자는 딱 그 자리에 서 있는 거에요. 나와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는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부정할 수는 없는 관계 속에 있어요. 그 자리에서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제한적이죠. 그런데 선택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또 아니에요. 다만 굉장히어려울 뿐이죠. 딱 그런 자리에 놓여 있던 미자는 역할 자체가 제한되어 있고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결국 종반부에서 결정적인 행동을 하게 되죠. 그게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요.”
-아름다움이 사라진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노력과 관련해 떠오르는 것은 ‘박하사탕’에서의 한장면입니다. 그 영화에서 김영호(설경구)는 자신이 고문했던 대학생을 세월이 흐른 뒤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치고는 화장실에서 ‘정말 인생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고 묻습니다. 그건 예전에 그 대학생의일기에서 김영호가 보았던 구절이었죠. 그런 측면에서 ‘시’는 ‘박하사탕’이 던졌던 물음과도 이어져있는 작품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런 측면이 있죠. 제가 인생이 실제로는 더럽고 추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아름답지만은 않고 종종 누추하다는 거죠.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해도 참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까 잠시 말했듯, 아름다움이라는 건 상황이 아름답지 않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삶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아름다움을 묻는 것이고 찾는 것이니까요. 시라는 게 꽃이나 달을 보고 술을 마시면서 읊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미자가 처음으로 시상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것은 꽃 앞에서입니다. 그 다음은 새소리를 들을 때였죠. 그런데 그러던 그녀는 땅에 떨어진 살구의 고통에 눈을 돌리게 되고, 결국 다리 위에서 뛰어내린 소녀의 절망에 대해 시를 쓰게 됩니다. 꽃이든 새든 처음엔 뭔가를 올려다보면서 시상을 떠올리려 했지만, 나중엔 살구든 다리 밑의 강물이든 결국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시를 쓰게 된다고할까요.
“그래요. 그렇게 조금씩 배워가는 거죠. 한 걸음씩 나아가긴 하지만 그만큼 더 혼란스러워지고 더 갑갑해지기도 할 거에요. 아름다움은 쉽게 눈에 보이는 게 아니고, 눈 앞의 아름다움이 그냥 아름다움같지도 않으니까요. 사실 시를 써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미자와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겁니다.”
-영화도 그런가요?
“영화 역시 그렇죠. 분명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해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많아요.”
-영화도 시처럼 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지거나 갑갑해집니까.
“갈수록 그래요. 오락을 주겠다는 목표의식을 분명히 하면 좀 덜 할 텐데, 뭔가 소통하고 또 발언하려고 하면 점점 힘들어지는 거죠.”
-이제까지 만드신 작품들 중에서 ‘시’는 상대적으로 잘 풀렸던 영화입니까.
“아니에요. 무척 힘들었어요.”
-그럼 이제껏 상대적으로 가장 잘 풀렸던 작품은 어떤 건가요.
“잘 풀렸던 영화가 제겐 하나도 없었어요.”
-그럼 항상 최악의 상태로 힘드셨던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워스트 다음에 또 워스트가 계속 되는 것 같다고 할까요. 이제는 정말 더 이상영화를 만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시’를 만들 때 그런 얘기를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에게 얘기한 적도 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또 저런다’라고 하나요, 아니면 ‘정말 큰일났다’라고 합니까.(웃음)
“반반씩이죠.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후자의 반응을 보인 사람이 절반 좀 안될것 같긴 하네요.(웃음) 문제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인데,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스트레스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에서 미자는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농담조로 말합니다. 감독님은 어떠신가요. 감독 기질이있다고 보십니까.
“없어요. 그래서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들어요. 기본적으로 감독은 촬영을 즐겨야 합니다. 제가 아는 감독들은 대부분 촬영장에 갈 때 소풍을 가듯 즐겨요. 홍상수 감독 같은 사람은안 찍으면 못 견디니까 계속 찍는 거에요. 그런데 저는 촬영장에 가는 게 흡사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같은 사람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무슨 영화를 찍겠어요. 사람은 즐길 수 있는 걸 해야 되는데 말이에요. 이번에도 최종 단계에서 음악 만든 것을 다 빼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그런 일이 생길 때면 괴로워요. 그런데 현장에선 늘 그래야 되거든요. 괴로워하면서도 하려니, 정말 괴로워요.(웃음)”
-‘시’에서 미자는 왜 시를 배우냐는 질문에 대해 ‘그러게요. 내가 왜 시를 배울까요?’라고 남 얘기하듯 반문합니다. 그렇게 괴로우신데, 감독님은 왜 영화를 하십니까.(웃음)
“그러게요. 내가 왜 영화를 할까요?’(웃음)”
-꼭 미자처럼 말씀하시는군요.(웃음)
“미자라는 인물이 괜히 나왔겠어요?(웃음) 시간이 흐르면 영화를 만들면서 너무나 힘들었던 상황에대해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연애와도 비슷한 듯해요. 실연을 겪으면 울고불고 하지만,결국 다시 또 사랑을 하게 되잖아요"
'Chisme > Intervi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창식 인터뷰 (0) | 2010.11.30 |
---|---|
송창식이 클래식이다 (0) | 2010.09.23 |
이동진 기자의 이창동 감독 인터뷰 (1) (0) | 2010.07.22 |
모든 추한 것들을 위한 노래 (0) | 2010.07.22 |
아네스의 노래 (0) | 2010.07.22 |